▲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가 교내에 붙인 대자보.

고려대학교가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공과대학 이모 교수의 사표를 수리하자 학생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원총)는 4일 성명을 내고 "자신이 지도하는 대학원생에게 계속 사귀자고 요구하고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교수는 교내 양성평등센터의 조사를 받고 징계절차를 밟아야 마땅하다"며 "하지만 학교는 교수의 사표를 수리해 퇴직금과 향후 재취업 기회까지 보장해줬다"고 비판했다.

원총은 "이번 사건은 약자의 위치에 있는 대학원생을 인권 유린과 탄압으로부터 보호할 구조적 여건과 성의를 갖추지 못한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교수라는 직위를 악용해 대학원생의 인권을 유린한 교수는 다시 강단에 설 수 없도록 강력하게 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사건은 명백하게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이라며 "교수라는 그 지위 하나만으로 교수는 태연하게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우리나라 대학원 사회, 특히 이공계 대학원에서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의 권력 불평등이 몹시 심각한 수준에 달해있기 때문"이라며 "대학원생의 학업과 연구, 노동과 임금, 진로와 미래 등 삶의 많은 부분들이 교수 개인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사법적 절차와 별도로 학교가 인권 침해 사건을 다룰 수 있는 자체적인 제도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인권 전문가가 상주하는 인권센터를 운영해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돕고, 가해자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고려대 측은 교수를 봐주기 위해 사표를 수리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앞서 고려대는 인사위원회와 총장 결재를 거쳐 지난달 28일 이모 교수의 사표를 수리한 바 있다.

고려대 관계자는 "양성평등센터에서 진상조사를 하고자 수차례 출석 요구를 했지만 사표를 제출했다는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며 "조사 결과가 나와야 징계위원회를 꾸릴 수 있는데,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교수와 학교는 법률상 고용관계이기 때문에 제출한 사표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 교수의 교원 신분을 빨리 상실하는 게 학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봐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사표 수리 여부는 학교의 의지에 달렸다며 재차 반박했다.

박원익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사표 수리를 반려한 전례도 있다. 이는 학교가 지닌 의지의 문제"라며 "법적 다툼의 여지는 있겠지만 사표 수리를 반려할 근거가 있다는 법률 자문도 받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사표 수리를 철회하는 것이 학교의 과오를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원총은 학내 자치기구단위와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학교 본부에는 5일 안에 정식으로 요구안을 제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