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IOC 선수위원 당선, 2004년 노무현 축전 받더니..

유승민 IOC 위원, 이건희 문대성에 이어 2024년까지 활동 박귀성 기자l승인2016.08.19l수정2016.08.19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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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유승민이 IOC 선수위원에 당선됐다. 유승민 위원은 지난 아테네올림픽에서 탁구 ‘신동’으로 불리며 금메달을 획득했고, 이런 유승민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선수위원으로 당선됐다고 1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당시 유승민 위원의 금메달 소식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8월23일 축전을 보내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유승민 선수는 전세계에 한민족의 저력을 과시하고 대한민국의 명예를드높인 자랑스러운 쾌거”라면서 “탁월한 기량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금메달을 수상한 것을 온국민과 함께 축하한다”고 밝힌 바 있다.

▲ 유승민 한국 탁구 간판 스타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다고 19일 오전 IOC가 발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날 유승민 위원에 대한 축전은 2016년에 다시 한 번 빛났다. 유승민 위원은 IOC선수위원에 출사표를 던지고 우리나라 유일의 선수위원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노심초사 그 결과를 기다려왔고, 이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수촌 내 프레스 룸에서 발표된 선수위원 투표 결과, 유승민은 23명의 후보 가운데 2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유승민 위원이 선출된 IOC 선수위원은 올림픽에 참가한 전체 선수들이 직접 선발하는데, 이번에는 지난달 24일부터 17일 자정까지 투표가 진행됐으며 이 투표 결과에서 상위에 오른 4명에게 IOC 선수위원 자격이 주어진다.

이날 투표에서 1위는 독일의 펜싱 선수 브리타 하이데만으로 1603표를 획득했으며, 유승민은 총 5815표 가운데 1544표를 얻어 2위로 당선됐다. 한국 선수로서는 최초 IOC 선수위원에 선출된 인물은 유승민 위원 이전에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의 문대성으로 2008년 처음 선출됐다. 유승민은 문대성에 이어 두번째 IOC 선수위원이 됐다.

또한, IOC 선수위원은 IOC 위원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는데, 올림픽 개최지 결정에도 투표에 참가할 수 있고, IOC 총회에 참석해 각종 규제 제정 등 IOC가 결정하는 모든 사항에 대해 투표권을 행사한다.

현재 IOC 위원을 맡고 있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14년부터 건강의 악화로 사실상 IOC 활동을 할 수는 상태이므로, 이번에 선출된 유승민 위원이 사실상 한국 유일한 IOC 위원인 셈이다.

유승민 위원을 선출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일(한국시간) 선수위원 선거 결과를 발표하면서 브리타 하이데만(독일, 펜싱)과 유승민(한국, 탁구), 다니엘 지우르타(헝가리, 수영, 1,469표),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 육상, 1,365표)가 선수위원에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이날 유효표는 총 5,185표였다.

IOC는 이와 아울러 “4명의 새 선수위원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8년 임기를 마친 클라우디아 보켈, 문대성, 알렉산더 포포프, 유밀카 루이스 루아체스에 이어 활동하게 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유승민 위원을 비롯한 이날 선출된 선수위원들의 임기는 오는 2024년까지 8년간이다.

유승민 위원은 19일 메인프레스센터에 마련된 대한체육회 사무실에서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졌고 외로웠다. 당선에 대한 기대가 적어서 부담도 됐었다”라고 소감을 밝히고, “한국에서 올 때, 어렵다는 전망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응원해주신 분들을 통해 힘을 얻게 됐다. 지난 25년은 나를 위해 뛰었다면 이제는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헌신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유승민 위원은 지난 2004아테네올림픽 남자단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쾌거를 이루며 한국 남자탁구의 간판 스타로 부상했다. 중학교 3학년 때인 지난 1997년 탁구 최연소(15세)의 나이로 국가대표로 발탁돼 당시부터 ‘탁구 신동’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런 유승민 위원에게도 역격과 시련은 적지 않았다. 겨우 18세의 나이로 첫 출전한 2000시드니올림픽 당시에는 선배 이철승과 함께 호흡을 맞춘 남자 탁구 복식에서 아깝게 메달을 놓치며 4위에 그쳤고, 유승민 혼자 출전한 남자 탁구 단식에서도 1회전 탈락의 쓴맛을 맛봐야 했다.

지난 2001년 고교를 졸업한 후 실업팀으로의 진출 과정에서 이중등록 파문에 휩싸여 1년여를무적 선수로 허송세월을 해야 하는 방황기도 있었다. 당시 대한탁구협회 실업팀 창단 규정은 제주삼다수(현 농심삼다수)가 지명권을 행사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유승민이 그간 자신을 지원을 해왔던 삼성생명으로 이적할 것을 완강히 버티면서 끝내 양쪽이 모두 등록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는 불상사가 되고 말았다. 훗날 다행히 대한탁구협회의 중재로 삼성생명에 안착한 유승민은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기향이 오르기 시작한 유승민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복식 금메달로 병역 면제혜택을 받았고 2003년 오픈대회에서도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내며 중국의 아성을 허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졌다.

당시 중국의 아성은 누구도 허물 수 없는 탁구 철옹성 그 자체였지만, 유승민은 중국에서 2003중국오픈탁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에 이어 오픈 투어를 총 결산하는 2003년 그랜드파이널스에서도 전 세계 챔피언 왕리친(중국.세계 1위)을 꺾은 뒤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아테네 올림픽이 열리던 해 2004년엔 이집트오픈 우승으로 오픈대회 첫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지난 7월 US오픈 2관왕에 오르며 세계랭킹이 3위로 도약해, 그해 8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올림픽에 참가했다.

당시 삭발로 결의를 굳게 다졌던 유승민은 대회 직전 허리가 삐끗하는 부상으로 1주일 정도를 쉬면서 100% 컨디션을 발휘하기 어려웠음에도 부상 투혼을 발휘, 상대 전적 6전전패의 열세를 딛고 중국의 차세대 에이스 왕하오를 결승에서 꺾고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한국 탁구에 값진 금메달을 선사했다.


박귀성 기자  skanskdl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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