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수석은 이날 오전 10시18분쯤 법원에 도착해 ‘사찰이 민정수석의 통상 업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네”라고 짧게 말했다. ‘세 번째 영장 심사인데 심경이 어떠한가’, ‘어떤 점을 소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엔 침묵을 지켰다. 우병우의 그간 답변을 보면 어지간한 혐의에 대해선 ‘업무 범위’라는 방패막을 내밀었다.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소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전 피의자 심문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며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우병우 전 수석은 법원을 나와 곧바로 경기도 의왕시 소재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아울러 우병우 전 수석이 맡던 ‘민정수석’의 통상업무의 한계도 분명치 않다. 우병우 전 수석은 이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우병우 전 수석은 지난달 29일 오전 5번째 검찰 소환에서는 ‘심경을 말해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게 내 숙명이라면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는 것도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가 네티즌들의 “황당하다”는 공분을 사기도 했다.

우병우 전 수석의 발언을 접한 한 네티즌은 “법꾸라지 우병우는 좀 겸손하게 하늘 무서운 줄 알았으면 좋겠다. 기고만장한 태도를 좀 버리길”이라며 우병우 전 수석을 직격했다. 이날도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비난은 마찬가지로 적지 않게 쏟아졌다. 대부분 우병우 전 수석을 비난하거나 저주, 막말, 원색적인 욕설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우병우 전 수석은 지난해 추명호 전 국가정보원 국익전략국장에게 자신을 감찰 중인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을 뒷조사해 보고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우병우 전 수석의 지시를 이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추 전 국장으로부터 우병우 전 수석이 관여했다고 인정하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병우 전 수석은 또한 총선에 출마 예정이던 전직 도지사 등을 사찰하도록 지시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우병우 전 수석은 이밖에도 ‘블랙리스트’ 관리 등에 소극적이던 박민권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등 주변 인물들의 ‘찍어내기’ 인사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지난 11일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적용해 우병우 전 수석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우병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면서 추명호(구속) 전 국가정보원 국익정보국장에게 지시해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과 이광구 우리은행장,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등의 뒷조사를 지시하고 이를 ‘비선 보고’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자신의 비위를 캐던 이석수 전 감찰관의 뒷조사는 민정수석의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한 대표적 사례로 보고 있다. 과거 혐의에 더해 혐의와 증거가 추가된 거다.

이와 함께 검찰은 우병우 전 수석이 국정원을 동원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김승환 전북교육감 등 진보성향의 교육계 인사들에 대한 개인적 약점을 찾아 보고하게 하는 등 불법사찰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병우 전 수석은 또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이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뒤 이 단체 산하 과학계 인사들의 정치성향 조사를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이런 혐의들과 관련해 지난달 29일과 지난 10일 우병우 전 수석을 다시 불러 조사했고, 추 전 국장 등 관계자 진술과 국정원 내부 문건 등 물증을 다수 확보한 만큼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다만 우병우 전 수석은 ‘자신이 한 일은 청와대 민정수석의 통상적인 업무 범위에 속한다’는 취지로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우병우 전 수석이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게 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청구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때문에 일각에선 아직도 검찰과 법원 내에 우병우 사단이 건재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우병우 전 수석의 구속 여부는 이날 밤이나 15일 새벽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영장 실질심사를 마치고 구치소로 이동하기 위해 대기하던 호송 차량에 올라 탔다. 우병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 두 차례 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됐지만 그때마다 서울구치소에 두 번씩이나 감치됐다. 우병우 전 수석에겐 익숙한 일정이다.  우병우 전 수석은 국가정보원에 불법 사찰을 지시하고, 비선 보고에 관여한 혐의 등이 추가돼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게 됐다. 우병우 전 수석은 이날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담담한 표정’으로 법정을 빠져나와 서울구치소로 호송됐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