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균 리선권 라이업 남과 북의 협상 대표들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아주 상반된 스타일이었다. 조명균 장관과 달리 북측 대표인 리선권 위원장은 ‘확 드러내놓고 하면 어떻겠습니까’라는 말로 회담 공개를 기습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남측 대표인 조명균 장관은 안정된 태도로 차분하게 할 말을 했다는 평가다. 9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집에 마주앉은 조명균 장관과 리선권 조평통위원장 두 사람의 회담 자세는 창과 방패를 구별할 수 없었다.

▲ 우리측 조명균 통일부 장관(우)과 북한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9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집에서 손을 맞잡았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위원장이 손을 맞잡음으로써 남북은 25개월간의 단절된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사진 = 인터넷언론인연대 장건섭 기자

조명균·리선권 두 대표가 회담 테이블 두고 마주 앉고 양 옆 2명씩 모두 10명이 배석했다. 9일 남북 고위급 당국회담으로 25개월 만에 남북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거다. 이날 회담은 우리측 제안에 따라 오전 10시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우리측 대표단은 오전 7시 30분께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판문점으로 출발했다. 우리측 대표단은 회담 장소에 미리 도착해 북측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조명균 장관 일행이 기다리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은 오전 9시 30분께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차량을 타고 평화의 집에 도착했고, 이어 북측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걸어 넘어왔다. 

조명균 장관 일행이 맞이한 북측 대표단에는 리선권 위원장 외에 전종수 조평통 부위원장, 원길우 체육성 부상, 황충성 조평통 부장, 리경식 민족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이 포함됐다. 이로써 조명균 장관 일행은 이날 남북 고위급 당국회담으로 25개월 만에 남북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됐다.

조명균 장관과 함께 동행한 우리측에서는 회담 테이블 좌측부터 안문현 국무총리실 심의관, 천해성 통일부 차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김기홍 평창 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 기획사무차장 순으로 배석했다.

조명균 장관의 건너편엔 북측에서는 좌측부터 황충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장, 전종수 조평통 부위원장,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 원길우 체육성 부장, 리경식 민족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 순으로 자리했다.

이날 전체회의에서는 조명균 장관과 리선권 위원장이 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합의문이나 공동보도문 등 향후 회담 결과물을 조율하는 실무접촉은 천해성 차관과 북측 전종수 부위원장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평창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실무적 입장 교환은 양측 체육계 인사가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장에 나타난 북한 대표 리선권 위원장은 군 출신답게 선이 굵은 목소리로 덕담을 건넸다.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조명균 장관 내정을) 축하합니다”라고 했고, 조명균 장관은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하면서 조명균 장관과 리선권 위원장은 날씨와 조카 이야기로 부드럽게 대화를 이끌더니, 민심을 거론하며 회담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리선권 위원장은 조명균 장관에게 “예로부터 민심과 대세가 합쳐지면 천심이라고 했습니다.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온 겨레에게 새해 첫 선물, 그 값비싼 결과물을 드리는 게 어떠한가...”라고 하자, 이때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던 조명균 장관은 똑같이 민심을 언급하며 되받았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우리 남측도 지난해 민심이 얼마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 직접 체험을 했고, 우리 민심은 남북관계가 화해와 평화로 나가야 한다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다는 것도 저희가 분명하게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대화가 무거워질 듯하자 리선권 위원장은 협상의 고수답게 조명균 장관의 유년 시절을 얘기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리선권 위원장은 “(조명균) 장관 선생이 그 평창올림픽부터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확실히 유년시절에 스케이트 탔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조명균 장관을 상대로 한 협상에서 리선권 위원장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해왔다는 방증이다.

리선권 위원장은 그러다가 갑자기 조명균 장관에게 회담을 모두 공개하자며 기습적인 ‘통큰’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리선권 위원장은 “기자 선생들도 다 관심이 많아서 오신 거 같은데 도리어 확 드러내놓고 그렇게 (공개 회담) 하는 게 어떻습니까”라고 조명균 장관의 허를 찔렀다.

조명균 장관은 마치 예상이라는 한 듯 당황하는 기색 없이 차분하게 비공개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조명균 장관은 “저희도 그건 공감을 하는데 아무래도 저희가 또 모처럼 만나서 할 얘기가 많은 만큼 일단 통상 관례대로 회담을 비공개로 진행하자”고 했다. 이처럼 ‘다혈질의 협상통’ 리선권과 ‘논리적인 협상가’ 조명균 장관의 첫 만남은 부드러웠지만 서로 빈틈을 내주지 않은 팽팽한 기싸움의 연속이었다.

조명균 리선권 두 협상 대표는 이날 저녁 21시쯤 공동합의문을 교환했다. 남북 고위급회담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가운데 11시간 동안의 마라톤 협상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종료회의에서 공동보도문을 교환하면서 모두 종료됐다.

조명균 리선권 두 대표는 남북이 북한 대표단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과 남북 군사 당국회담 개최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은 남한 대표단의 비핵화 언급에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날 협상에서 북측의 군사선(군사용 유선전화)을 재개통한 것 또한 하나의 결과물에 포함됐다. 

조명균 리선권 두 대표의 이날 협상 결과물은 남북 당국은 고위급 남북당국회담을 통해 △올림픽 계기 북한 대표단 방남 및 문서 협의 △군사 당국 회담 개최 △고위급회담 및 각 분야 회담 개최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남북 당국은 공동보도문에서 “북측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고위급 대표단과 함께 민족 올림픽 위원회 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을 파견하기로 하고 남측은 필요한 편의를 보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명균 장관의 협상 후 복귀하는 보따리엔 향후 남북간 대화와 소통을 위해 필요한 결과물들이 한껏 담겼다. 이런 조명균 장관 협상 보따리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토대로한 첫 결과물이 나왔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이날 조명균 장관의 협상력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