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양승태 경악할 과거들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양승태 고문사건 고리 박귀성 기자l승인2018.01.28l수정2018.01.2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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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은 고문사건 연결고리가 있다.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양승태 등은 어떤 연결 고리일까? 이근안을 제외하면 나머지 여상규, 황우여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은 다들 한 세대를 풍미한 인물들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27일엔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이 연결된 고문 기술자들과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폭로했다.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으로 얽혀 가정이 완전히 망가진 집이 있다. 집안 어른의 죽음 후 조카들도 의문의 죽음과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가족들이 도망치듯 하루아침에 마을을 떠난 뒤 마을 사람들도 이 집 사람들을 잊었다. 녹색 지붕 집 사람들이 마을을 다시 뒤집어놓은 것은 지난해 7월이었다. 벌초를 하러 온 큰 아들이 홀연히 사라졌다. 수색 끝에 찾아낸 큰 아들은 이미 숨진 뒤였다. 자살의 흔적도, 타살 의혹도 남기지 않고 숨진 그는 최낙효 씨다.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와 연관이 있는 죽음일까?

▲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의 과거 행적을 정리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으로 얽힌 고문과 사법살인을 심도 있게 다뤘다.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의 과거 행적을 고발한 '그알'의 화면을 갈무리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한 많은 삶을 살았다고 회상했다. 마을 주민들은 “교편생활을 하다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 “아버지(최을호) 때문에 교직생활 하다가 학교를 못 갔다”, “아버지로 인해 자녀들이 피해 본 거다”라는 증언을 늘어놨다. 아버지로 시작됐다는 지독한 악순환의 연속은 무엇이었을까.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은 이 풍비박산이 난 집안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아버지는 고 최을호는 사형수였다. 죄인의 자식으로 자란 형제들은 평생을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고 한다. 이런 잔혹한 비극의 시작은 1982년 여름이었다. 깊은 밤, 낯선 이들의 방문을 받은 뒤 홀연히 모습을 감춘 아버지. 경찰에 실종신고까지 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찾아주겠다며 집에서 묵었던 이들이 떠난 후 사촌형 최낙교, 최낙전 씨도 사라져버렸다. 이들 형제는 사형과 징역 15년을 선고 받은 아버지와 사촌 형은 간첩이었다. 이들이 무려 20년간 간첩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최을호 씨는 사형을 당했다.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이 이 사건에 관여했을까?

고 최을호 씨의 둘째 아들에게 “내가 여러 사람을 겪어보고 사형수 만나면서 목회활동 하는데 자네 아버지만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고 최을호 씨의 유언을 들었던 문장식 목사다. 문장식 목사는 그날의 기록을 보관하고 있었다. 문장식 목사는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 충격이었다”고 고 최을호 씨의 마지막을 회상했다.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은 최을호 씨 죽음과 관계가 있었을까?

2017년 6월 재심에서 최을호 씨와 조카들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이들은 간첩이 아니었다. 억울한 누명을 벗었지만 살아있는 피해자는 아무도 없다. 모두 죽어버린 것이다. 검찰 조사가 한창이던 최낙교 씨는 구치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고 최낙전 씨는 오랜 징역 생활 후 가석방 4개월 뒤 스스로 모습을 끊었다. 큰 아들 최낙효 씨는 고향에 왔다가 갈대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숨진 채 발견됐다.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이야기는 언제나 등장하는 것일까?

며칠씩 집에서 머물며 아버지를 찾아준다고 했던 경찰, 간첩 증거를 가짜로 만들었던 그는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형사이자 지옥에서 온 장의사라 불렸던 이근안이었다. 이근안은 불법 체포 및 고문 혐의로 수배됐고 도피 생활 중 자수해 법적 처벌을 받고 출소했다. 당시 이근안을 찾아 전국을 샅샅이 뒤진 수사기관은 허탕을 쳤지만 이근안의 도피 생활은 어이없게도 자신의 집안 천장 속이었다. 여상규, 황우여 양승태는 또 왜 등장하는가? 

영화 ‘1987’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자행된 끔찍한 고문 등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현실에서 피해자들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근안은 악명 높은 ‘고문 기술자’였다. 이근안을 만났던 최낙전 씨는 출소한 뒤에도 불안해 했다고 한다. 최명수(가명, 고 최을호 씨 둘째아들)씨는 “‘너희는 몰라. 안 당해 보면 몰라’라고 하더라. 내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이 그 곳이더라”고 말했다.

이근안은 고문과 구타,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자행했다. 잔혹한 고문을 했던 이근안이 원했던 것은 단 하나, 간첩이라는 자백이었다. 최낙전 씨는 만들어진 죄인이 됐지만 자신의 기막힌 상황을 호소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출소 후에도 부안관찰이라는 명목 하에 집 근처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겪은 일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출소 4개월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가장 하지 못할 잔인한 짓이 바로 ‘고문’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이근안을 찾아 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동네 주민은 “이근안은 못 보겠더라. 부인은 매주 폐지 주우러 다닌다”고 말했다. 힘들게 전화 연락이 닿은 이근안은 “인터뷰 안한다. 일절 평생 인터뷰 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에 대해 말하자 이근안은 “재론하고 싶지 않다. 병중에 있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 대공분실 수사관은 “30년 넘은 일인데 그걸 뭘...대공분실 직원들이 전부 고문하지 않는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근안 씨만 그렇다고는 얘기할 수 없고...”라며 “우리만 한 게 아니다. 국민들은 전부 이근안 씨가 했던 걸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연행과 고문은 대공분실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라며 억울하다는 황당무계한 입장을 보였다.

그 시절 먼 훗날 조작으로 밝혀진 간첩조작 사건은 남영동 대공분실만이 아니었다. 1981년 봄 진도에서 김양식을 하던 허현 씨는 남산 국가안전기획부로 끌려갔다. 진도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인 허현 씨는 60일간 겪었던 잔혹한 고문들에 대해 증언했다. 고문의 흔적은 여전히 몸에 새겨져 있다. 25년이 흐른 뒤에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고 여전히 자신을 고문한 수사관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한홍구 교수는 “진실화해위원회나 국정원, 국방부 등의 과거사위원회가 만들어지며 조사를 했고 많이 밝혀냈다. 문제는 가해자가 다 000이다. 기록이 안 돼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만하고 뻔뻔한 이유가 가해자가 기록이 안 돼 있어서 그렇다”고 지적했다.

피의자 불상. 피의자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자신을 고문하는 사람의 이름도 몰랐다. 어렵게 정보를 얻어 고소해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피의자들은 번번이 법망을 빠져나갔다. 이런 고문 피해자들은 이날 그알에서 적지 않게 등장했다. 모두 죽었거나 죽음보다 더 힘겨운 고통속에서 겨우 연명하고 있다.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은 이런 고문 사건과 관계가 있고 여전히 세상을 호가호위하며 살고 있다. 심지어 국무총리나 대법관 등의 전직을 가지고 말이다. 이런 천인공노할 인간들이 버젓이 이나라에 공로자와 성공한 인물로 기록되어 국민들의 표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의 과거 행적을 본 이날 ‘그알’의 시청자들은 분기탱천했다. 대체 이 나라의 정의와 양심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 인간 쓰레기들의 조력을 받아 권력을 이어가고, 또다시 권력을 쥐고 해먹자고 온갖 부정을 저지른 인간들은 다른 짓거리로 감옥에 가거나 가려는 준비를 해야할 처지가 됐다. 이날 ‘그알’이 방송되자 인터넷과 SNS상에는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등을 맹렬히 비난하는 네티즌들의 비난과 욕설이 봇물을 이루었다. 여상규, 황우여 이근안 안강민, 임휘윤, 정형근, 양승태 이들 가운데 몇 명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


박귀성 기자  skanskdl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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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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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미 2018-01-31 14:19:08

    저런 것들이 몰염치하게도 아직도 살아서 이 나라를 좀먹고 있으니..ㅉㅉ신고 | 삭제

    • 서명합시다 2018-01-29 15:16:46

      [청원진행중] 군사독재 시절 자행된 간첩 고문 조작사건들의 가해자들을 처벌해주십시오(서명 가장 많음)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18326#_=_
      여상규 페이스북에서 청원관련 글 즉각 스팸, 삭제 처리 중이에요...신고 | 삭제

      • 국민 2018-01-28 11:10:56

        국민들을 이간질하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이런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라는 사람은 무었을 위해? 언제까지 과거에만 매달려 일반 국민들을 피곤하게 할겁니까? 우리들의 주적이 아니라면^^ 정말 싫증나는군요. 이젠 미래의 희망을 국민들에게 제시 해 주십시오. 정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주십시오. 대통령의 외침은 어딜 갔습니까? 작금의 작태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청년들? 의신고 | 삭제

        • 대구시민 2018-01-28 09:59:19

          여상규 황우여 양승태 정형근 정말 인간말쫑들
          분노가 치밀어 잠을 설쳤다
          아직도 이런인간들이 권력에 힘입어 잘 살고 있다니 후~
          소급입법 나발이고 법을 개정해서라도 이런인간들 단죄해야한다.
          귿신고 | 삭제

          • 정주훈 2018-01-28 08:30:05

            오자 투성이네요. 기자는 자기가 쓴 글들을 한번은 훑어보고 올려야지요.
            새로운 사실을 이제 알았네요. 인간 쓰레기들.신고 | 삭제

            • 김재경 2018-01-28 08:00:23

              이런 썩은 놈들이 부귀영화는 다 누리고, 책임은 회피하는 걸래중에 상걸래들이다. 고문과 거짓 판결로 이들의 삶은 산산조각이 났는데 니놈들은 막대한 연금에 권력까지 쥐고 나라를 이지경으로 몰고간 것도 모자라 도탄에 빠트린 만고의 죄인이다. 걸래자식들아!신고 | 삭제

              • 국민1 2018-01-28 07:44:04

                진심어린 사과라도 했어야~~~그땐 당신들도 힘이 없었잖아요라고 말해 줄 수 있는데...그때보다 더 큰 잘못을 하고 있군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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