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양원진 인민군 묘역 찾아 “열사님들께 죄지은 마음”

양원진 “조국의 자주평화통일 위해 끝까지 싸울 것!” 박귀성 기자l승인2018.09.27l수정2018.09.2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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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협 = 박귀성 기자] 제5회 한가위 평화협정 기원제가 시민사회단체 ‘평화협정운동본부’ 주최로 30여명의 참석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26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소재 인민군 묘역에서 열렸다. 이날 기원제를 준비한 주최측은 인민군 제1묘역을 찾아 6.25당시부터 지금까지 고귀한 생명을 희생한 인민군들의 영혼을 달래고 민족의 자주평화통일을 기원했다.

이날 기원제에 참석한 인민군 출신 민족자주평화통일운동가 양원진 선생은 추모사를 통해 “이렇게 먼저 가신 선배들이 묻혀 있는 이 자리에 우리가 명절을 맞이해서 뵈러 온 것은 저는 정말로 감격적이다”라면서 “젊은 동지와 나이 드신 동지와 함께 이곳을 찾아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 우리 무명용사 전사들이 돌아가신데 대해 항상 마음의 부담이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 민족 자주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진보진영의 각계 인사들 30여명이 26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소재 인민군 묘역에서 제5회 평화협정기원제 및 반제자주통일열사 추모제를 마치고 평화통일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양원진 선생은 이어 “저는 50년 7월이었다. 인민군에 종군해서 그해 10월달에 온양 전선에서 미군 기계화부대와 조우해서 우리 중대 150명이 모두 전멸했다. 혼자 살아나왔는데 중기관총수였다”면서 “다행히 제가 중기관총 명수였다. 그래서 그 중기관총을 끌고 올라가서 탄약수 부사수 다 죽었는데 나 혼자 남아 기관총을 소나무가지에 얹어놓고 기계화부대에 복수전을 한 적 있다. 그때 돌아가신 150명 우리 중대원들 항상 죄스럽게 생각하고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고 저만 혼자 살아남은 것이 항상 죄인으로 가책을 받고 있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양원진 선생은 이어 “중대장이 숨이 끊어지면서 ‘가슴 안에... 가슴 안에...’ 하면서 돌아가셨다. 그 뜻은 (바로) 가슴 안에 당증이 있었다. 당시 부상당한 1소대장이 있었는데 그 소대장이 자신도 다리에 부상을 당했는데 중앙당에 그 당증을 가져다 바쳤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양원진 선생은 이에 더 나아가 “나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도 우리 전우들이 피로 얼룩지고 피로 물들은 우리 강토를 잊은 적이 없다. 나무를 봐도 돌을 봐도 그 생각이 난다. 먼저 가신 용사들 영면하시라. 조국통일이 다가온 것 같다. 시간은 우리편이고 미국놈들이 속아나는 것을 난 믿고 있다. 남은 피 한방울까지 숨을 쉬는 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먼저 가신 동지들이 못 다 한 것을 이루기 위해, 조국통일을 이루기 위해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양원진 선생은 남한 대부분 지역이 북조선 인민군에게 점령됐을 무렵 학생위원회 활동을 하다 1950년 7월 의용군에 입대한 후 서해안 방어임무에 투입됐다. 무전기 고장으로 연합군의 인천상륙을 늦게 통보받은 소속부대는 차령산맥과 태백산맥을 타고 숱한 전투를 치르며 굶주림 속에 그 해 10월 간신히 38선을 넘어 이북으로 갔다.

양원진 선생이 장호원에서 출발해서 북한 땅에 도착했을 당시엔 35명의 부대원은 2명으로 줄어 있었다. 이후 과거 1959년 고향인 신안군 지도면에 임무를 띠고 남파됐다가 친누나의 밀고로 체포됐지만 당시 공소보류로 석방된 후 이듬해 다시 구속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무기형을 선고 받고 안양과 전주, 광주교도소 등지를 옮겨 다니며 29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다 지난 1988년 12월 25일 형집행정지로 출소했다.

안원진 선생은 1988년 12월 25일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후 고압가스와 피아노조율사 자격증을 따고 LPG 공급회사에서 일하며 생활했다. 현재 한국전쟁희생자유족회 고문과 전북보도연맹유족회 회장을 맡고 있다. 안원진 선생은 그 후 진보진영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남북 교역 가로막는 5.24조치 철회 요구 집회에 참석하는가 하면,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과 남북민간교류 보장을 촉구하기도 했고, 양심수 석방 운동에도 앞장섰다. 이처럼 안원진 선생은 자주평화통일운동가 및 진보진영의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제 구순을 바라보는 안원진 선생은 이날 인문군 묘역을 찾아 피를 나눈 동지들과 조우하고 감회를 밝히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이날 인민군 제1묘역에서 엄숙히 거행된 제5회 평화협정 및 반제자주통일열사 추모제는 인천 자유공원에 세워진 맥아더 동상 철거를 주장하며 지난 7월 27일 맥아더 동상에 불을 질렀던 이적 목사와 인민군 출신으로 43년을 옥살이한 비전향장기수이자 자유평화통일운동가 안학섭 선생, 송무호 평화통일운동본부 상임대표 등 30여명의 사회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박귀성 기자  skanskdl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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