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백화점이 서울 청담동 학동사거리 인근에서 운영하는 패션 매장 마이분·분더샵에 지난주 낡은 카키색 가방과 지갑이 등장했다. 개당 가격은 20만~160만원대. 해외 명품처럼 보이는 이 가방은 2차 세계대전과 중동 전쟁에서 미군이 쓴 군용 텐트 천을 활용해 만든 재활용 제품이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카네이 테이'가 제작해 내놓은 것으로 이 매장에서 400여개를 사들였다.

가방을 만든 디자이너 정관영씨는 "작은 신예 브랜드인데도 신세계는 물론 다른 대기업 편집 매장에서도 입점 제안을 해오고 있다"며 "폐천을 재활용했어도 일일이 수작업을 거치는 정성이 필요하고 원단이 모두 달라 희소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버려지는 물건을 활용해 새 제품으로 만드는 '업사이클링(upcycling)' 산업이 뜨고 있다. 영세 중소기업 위주이던 이 분야에 대기업들이 최근 가세하고 있으며 5년 전 7개이던 국내 업사이클링 브랜드는 작년 말 68개로 10배 정도 급증했다.

◇'트럭廢천' 갖고 50만원대 명품 가방 만들어

업사이클링 산업의 효시(嚆矢)는 1993년 세워진 스위스 가방 제조업체 프라이탁(Freitag)이다. 트럭 덮개로 쓰는 방수천을 갖고 가방 제품을 만드는 프라이탁은 매년 40만개를 생산, 전 세계 470개 매장에서 개당 50만원 안팎에 팔고 있다. 국내에도 3~4년 전부터 인기를 끌어 서울 이태원에 매장을 열었다. 타이어를 이용해 신발을 만드는 인도네시아 인도솔, 베트남전쟁 당시 라오스에 투하된 폭탄 알루미늄을 수거해 액세서리를 만드는 미국 아티클22, 버려진 티셔츠에서 실을 뽑아 짝짝이 양말을 제작하는 미국 솔메이트 등도 동일한 업종에 속한다. 세계적으로 250여개 업사이클링 기업이 활동 중이다.

 
▲ 최근 대기업 의류 계열사들이 버려지는 물건을 활용해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upcycling)’ 산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사진은 2013년 말 서울 중구 이화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업사이클, 첫 번째 조각’ 전시회에 진열된 가방. 폐신문을 활용했다. /윤동진 객원기자국내에서는 2012년 업사이클링 브랜드인 '래코드'를 선보인 코오롱FnC가 선두 주자다. 이 회사는 폐차(廢車)에서 나온 에어백, 낙하산, 폐청바지 등 다양한 폐기물을 소재로 디자인 요소를 강화했다. 버려진 원단을 활용하는 관계로 최다 5개 이상 같은 제품이 없다는 게 특징. 국내보다 홍콩·쿠웨이트·이탈리아 등 해외 매출이 많다. 한경애 상무는 "상설 할인 매장을 돌고 돈 이월(移越) 상품 의류들이 '재고 3년차'에 접어들면 브랜드 관리를 위해 쓰레기 처리장에서 소각된다"며 "매년 40억원 정도씩 소각 처리되는 재고를 재활용하기 위해 '래코드'라는 브랜드를 내놓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제일모직도 지난해 서울 삼청동에 '하티스트 하우스'라는 패션 매장을 열면서 업사이클링 기법을 도입한 가방과 소품을 선보였다.

◇중소기업들 적극 진출…2년 새 300% 성장할 듯

국내에선 이 분야에 중소기업들이 더 활발하게 가세하고 있다. 폐(廢)현수막 등을 가방이나 우산으로 만드는 터치포굿, 헌옷이나 폐가죽을 휴대폰 액세서리나 신용카드 케이스 등으로 제조하는 리블랭크, 폐PET병을 활용해 가방이나 의류를 생산하는 오르그닷 같은 기존 기업 외에 지난해에만 50여개사가 새로 업사이클링 산업에 뛰어들었다. 이 중 30곳 정도는 독자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문상철 기자 77ms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