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피고인, 공소사실과 관련해 할 말 있습니까?"(재판장)

 

"없습니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법정에 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고개를 숙였다. 땅콩회항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서는 변호인을 통해 반성의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항공기 항로변경죄와 폭행,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등 주요 혐의는 모두 부인했다.

 

조 전 부사장은 이날 오후 2시30분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재판장 오성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 초록색 수의를 입은 채 출석했다. 조 전 부사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달 30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치소에 수감된 지 20일만이다. 창백한 얼굴이 얼핏 보였지만,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피고인석에 앉아서도 줄곧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감췄다. 관련자 등의 수사기관 조서 등에 대한 증거 채택 논의가 있을 때는 오른 손으로 턱을 괸 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의 공소사실 낭독과 변호인의 모두발언 뒤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힐 기회가 주어졌지만 조 전 부사장은 입을 다물었다.

 

다만 변호인이 "피고인(조 전 부사장)이 (회항과 관련한)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인정하고, 유무죄를 떠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사무장과 승무원, 기장 등 많은 관계자들이 깊은 피해와 상처를 입힌 점은 통렬하게 반성한다"고 밝혔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주요 혐의를 부인했다. 특히 법정 형량이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로 최소 징역형에 해당하는 항공보안법상 항로변경죄에 대해 변호인은 "항공기가 토잉카에 의해 불과 20미터 정도 이동한 것일 뿐이고, '항로'란 하늘길, '공간의 길'을 의미하는 것으로 활주로로 이동하는 경우는 '항로 변경'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회항과 관련한 세부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사건의 발단과 세부 경위가 조 전 부사장의 기억과 서로 다르거나 실제보다 과장된 면이 있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피고인은 (회항 직전에) 박창진 사무장과 기장이 어떤 대화를 했는지 알지 못한다"며 "기장은 일관되게 박 사무장으로부터 승무원 한 명이 하기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박 사무장의 판단대로 '푸시백'을 중단한 뒤 램프리턴을 했다"고 밝혔다.

 

특히 "'램프리턴' 뒤에야 박 사무장으로부터 자세한 내용 들었다"며 "회항이 항공기 운항 권한이 있는 기장의 의사에 반해 위력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냐는 의문을 갖게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임직원들에게 국토교통부 조사에서 거짓 진술을 하도록 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에 대해서도 "피고인은 구체적 사실 관계를 모르고, 국토부 조사 과정에서 승무원 등에게 허위진술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기내에서 박창진 사무장의 손등을 파일로 내리쳤다는 등 폭행 혐의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변호인은 특히 "수사기관이 아니면 모르는 정보가 언론에 공개돼 피고인과 남편, 19개월 쌍둥이 아이는 정신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하게 됐다"며 "보이지 않는 상대방인 여론에 대해서도 피고인의 방어권을 지켜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이날 법정은 취재진과 일반인 방청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공판이 시작되기 2시간여 전부터 법정에 입정하려는 이들로 긴 줄이 생겼으며, 개정 시간 내내 72석으로 이뤄진 방청석이 꽉 찬 것은 물론 통로에까지 방청객으로 메워졌다. 대한항공에서는 직원 일부가 법정에 나와 재판을 지켜봤다. 함께 기소된 여 모 상무의 가족도 나와 재판 내내 방청석을 지켰다.

 

한편 조 전 부사장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 전부사장 등에 대한 변론은 법무법인 광장 서창희(52·사법연수원 17기) 변호사 등이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부사장이 조사를 받을 당시부터 법률 대리 업무를 보아온 서 변호사는 조 전부사장을 기소한 서울서부지검 김창희 차장검사(52·연수원 22기)와 서울대 법과대학 동기다.

 

김 차장검사 등과 같은 과 동기인 법무법인 화우의 유승남 변호사(52·연수원 18기) 등도 변호인단에 참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