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말 일본, 지난달 유럽에 이어 중국까지 나서면서 통화 전쟁이 가열되는 모습이다. 

 

금리 인하나 지준율 인하 같은 '돈 풀기 정책'은 경기를 부양하는 동시에 자국의 통화 가치를 끌어내려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외양은 각국의 금리 문제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글로벌 환율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환율전쟁에서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한국도 추가 금리 인하(현재 연 2.0%)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1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로선 정책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 인민은행이 4일 저녁 은행 지준율을 0.5%포인트 낮춘다고 발표했다. 은행이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예치해야 하는 돈의 비율을 낮춰 시중에 돈풀기 효과를 노린 조치다. 지준율 인하는 기준금리 인하 3개월만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중국 정부가 최근 경기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2012년 5월 이후 처음 발동된 전면적 지준율 인하는 중국이 정책 방향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에서 '경기 부양' 쪽으로 선회하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4년 만에 가장 낮은 7.4%에 그쳤다. 

 

또 글로벌 경기 침체와 저유가 등으로 인해 1월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2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생산자 물가지수는 34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준율 추가 인하와 기준금리 인하 등 후속 조치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경기 부양을 위해 중국 당국이 지준율을 점진적으로 15%까지 낮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중국의 지준율 인하는 올해 들어 빨라진 전세계 통화당국의 '도미노 통화완화'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 양면적인 영향을 미친다. 올해 초 유럽중앙은행(ECB)이 채권을 사서 돈을 푸는 양적완화 카드를 꺼냈고, 이에 앞서 유로화 절하를 의식한 스위스가 환율하한을 폐기했다.

 

이밖에 덴마크, 인도, 캐나다, 호주가 올해 금리를 인하했고, 싱가포르도 환율 절상속도를 낮추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내수부양과 자국통화가치 절상을 막기 위한 조치에 앞 다퉈 나서고 있는 셈이다.

 

각국의 도미노 통화부양책은 세계 경제 회복을 돕는 다는 측면에선 우리에게도 '득'이 되지만 이로 인해 원화 절상(환율 하락) 압력이 높아지고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다. 중국의 지준율 인하 역시 환율방어 보단 경기둔화에 대한 대응이 주목적이지만 부수적으로 수반되는 원화 대비 위안화 절하는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의 통화완화는 기본적으로 자국 내수부양을 위한 것이지만 부수적으로 위안화 하락을 동반하게 된다"며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대응 하지 않는다면 환율 측면에서 위안화 대비 원화 절상으로 수출 경기 위축 등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열 총재는 작년 말부터 "금리 인하보다 경제 구조 개혁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금리 인하에 섣불리 손을 대기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연 2%로 사상 최저 수준인 기준금리를 더 내릴 경우 1060조원(작년 9월 기준)에 달하는 가계부채 문제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나 홀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이 6월 이후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걸림돌이다. 이 총재는 그동안 "국내외 금리차(미국 등 선진국과의 기준금리 차이)가 일정 수준은 돼야 국내 채권 시장 등에 들어와 있는 해외 자본의 유출, 이탈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은 내부에서는 미국과 2% 정도는 금리차가 나야 한다는 입장이 많다.

 

사실상 '제로(zero) 금리'인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데, 한국이 금리를 내려 금리차가 2% 밑으로 떨어지면 이득이 줄어드는 해외 자본이 한국을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총재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정부 내부에 가급적 오는 3월 이내에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하는 것을 바라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일각에서는 "기준 금리를 더 낮춰서 내수를 부양하는 것이 당장 한은이 해야 할 일"이라는 기류가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