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협 = 김병탁 기자]유난히도 무더웠던 이번 여름을 잊은 듯 벌써부터 밤공기는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10월이 넘어서면 이제는 곱게 두었던 가을 옷을 다시 끄집어내어 입어야 될 만큼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빠르다. 무더운 여름 때문에 미뤄두었던 나들이 계획으로 인해, 벌써부터 주말이면 좋은 휴양지에는 나들이객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기 시작했다. 곧 가을에 단풍이 들면 이 여파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교통체증은 어느 정도 견딜만한 고통이다.

한편으로 기자로서 이러한 계절변화에 거리를 떠도는 걸인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해 죽어나가는 노숙인들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시는 겨울 점퍼 제공 등 여러 복지를 꾀하고 있지만,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선 턱없이 부족한 지원이다. 당장이라도 서울역과 지하철 등에 내쫓겨 바람한 점 피할 곳 없는 그들에게 이 땅의 온전히 설 곳은 그리 많지 않다.

▲ 서울역 밤 풍경

따라서 때는 이르지만 그들의 삶을 알아보고자 몸소 체험해 봤다. 먼저 서울역에 가 보았다. 12시가 넘자 벤치에 누운 기자를 깨우기 시작했다. 기자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그전에 소주 한 병을 마신 상태라, 강압적인 그들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몇 번이 실랑이 후, 그들의 등살에 떠밀려 서울역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허름한 옷차림 덕분인지 거리의 행인들이 자연스레 길을 터준 건 편했다. 서울역 지하통로에서 다시 잠을 자려고 누웠으나, 주위의 노숙인들과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 때문에 쉽사리 잠을 청할 수는 없었다.

다음날 국회에 출석해야할 일이 있고, 잠을 청할 수 없어 국회의사당역 근처로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행색이 누추해 택시는 쉽사리 멈추지 않고 지나쳐 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택시를 잡을 수 있었으며, 국회의사당역에 내렸다. 그리고 국회의사당역 지하철로 내려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고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굳게 닫힌 지하철 셔터문은 열리고 지하철 근무자들이 하나, 둘 아침 출근객들을 맞이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어 기자에게도 왔으며, 강제로 셔츠를 당기는 등 깨우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강제로 깨우냐는 질문에 관계자는 지하철 안전 문제라며 또 다시 문전박대를 당해야만 했다.

다시 거리로 나왔다. 아직은 바깥공기가 그리 많이 차갑지 않아 견딜 만했다. 하지만 더 추워진다면 노숙인들의 생명은 장담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거리를 떠도는 걸인들에게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책은 현재로선 한 방에 30명이 넘는 노숙인시설에 들어가 통제된 삶을 살게 하는 것 외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러나 거리를 떠도는 노숙인들과 이야기 해 본 결과, 그 누구도 통제된 방식의 삶을 원치 않았다. 지금의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점에서 정부의 일차적인 노숙인 복지정책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기자의 소견이다.

12년도 보건복지부에서 노숙인 현황을 조사한 방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노숙인은 4921명이 있으며 그중 시설을 의탁하지 않고 거리를 떠도는 노숙인은 1785명이나 되었다. 거리노숙인 수는 서울시가 1022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부산(171명), 대구(160명), 경기(157명) 순으로 주로 대도시에서 밀집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주로 여름의 뜨거운 뙤약볕과 겨울의 한파를 피하기 위해 주로 역 근처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을 돕기 위한 여러 단체들 또한 이곳에 대거 밀집되어 있다.

현재로선 민간단체의 지원은 무료급식소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시에선 노숙인을 무료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없거나 있어도 미온적인 수준에서 그쳤다. 당장 다가올 한파로 인한 노숙인의 피해가 예상된 가운데, 어제와 다른 오늘을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김병탁 기자  kbt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