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이정희 전 대표가 등장했다. 이정희 전 대표의 재등장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이정희 전 대표는 비공식적으로 세월호 청문회에 참석한 적도 있지만, 이정희 전 대표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이정희 전 대표는 통진당 해산 당시 전 의원들 및 당직자들과 함께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진당 해산이 결국 박근혜 정부가 주도한 계획적 시나리오였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라도 자백해야 한다”고 억울한 울분을 토해냈다.

이정희 전 대표 등 전 통진당 의원 5명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진당 해산에 청와대의 개입 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자료가 확보됐다”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청와대 전 비서실장 등 통진당 해산 절차에 관여한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정희 전 대표가 말한 ‘결정적인 자료란’ 故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의 비망록이었다.

▲ 이정희 전 대표와 윤종오 의원 등 옛 통진당 소속 의원들이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권의 통진당 해산 시나리오에 대해 폭로하고 맹렬히 비난했다.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은 이미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이 지난 2일 KBS언론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한 바 있다.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에는 2014년 10월4일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통진당 해산판결-연내 선고’라고 언급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해당 문구만 보아선 김기춘 실장이 헌재 결정과 관련해 어떻게 얼마나 개입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비망록을 작성한 당사자가 헌법재판소 등을 관장하는 업무를 주임무로 하는 민정수석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김기춘 실장이 부하인 김영한 수석에게 헌재의 결정 선고와 관련해 모종의 지시를 내렸다는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이정희 전 대표 등은 기자회견 전에도 통진당 해산과 관련해 청와대가 헌재의 결정 과정에 개입했거나, 역으로 헌재가 청와대 쪽으로 관련 정보를 사전에 알려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정희 전 대표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은 자백하십시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는다. 통합진보당을 강제로 해산시키기 위해 대통령과 청와대는 어떤 음모를 꾸몄는가? 누구를 동원해 어떤 일을 저질렀나?”라고 따져 물었다.

이정희 전 대표는 이어 “얼마 전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공개됐다. 설마 했던 일이 사실이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청와대는 통합진보당을 강제해산시키기 위해 헌법이 명시한 삼권분립의 원칙마저 어겼다”고 폭로했다.

이정희 전 대표는 특히 “해산 결정 두 달 전인 2014년 10월, 김기춘 실장이 ‘통진당 해산 판결-연내 선고’를 지시한 사실이 비망록에 뚜렷이 적혀 있다”면서 “이주일 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연내에 진보당 해산 심판 결정을 하겠다고 국회의원들에게 말했다. 선고기일이 통보되기 20일 전에 이미 청와대는 해산 결정 뒤 지방의원 지위 박탈 문제를 선관위와 논의했다. 김기춘 실장 지시대로 선고기일이 정해지고 청와대의 주문대로 강제해산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 수호 최후의 보루여야 할 헌법재판소를 청와대 밑에 둔 것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박근혜 정권의 헌법유린을 맹렬히 비난했다.

이정희 전 대표는 나아가 “통합진보당 해산은 청와대가 삼권분립마저 훼손하며 헌법을 유린한 폭거”라면서 “김기춘 실장이 이끄는 대통령 비서실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선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치보복의 컨트롤 타워였다. 비망록의 ‘새정연, 통진당 해산 반대-새누리 반박 준비’ 메모로 드러나듯, 청와대는 집권여당까지 동원해 민주주의 파괴 범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즉, 통진당 해산에 있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헌법을 유린한 공범관계라는 주장이다.

이정희 전 대표는 이어 “여론전과 시민사회 활동이라며 극우단체를 동원해 종북몰이를 벌였다. 법무부에 헌법학자 칼럼 기고를 주문해 보수학자 동원도 빼놓지 않았다. JTBC 손석희 앵커의 김재연 의원 인터뷰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와 재판 진행 상황까지 점검하며 언론을 압박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청와대가 기획하고 극우단체부터 집권여당까지 행동대로 총동원한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했다.

이정희 전 대표는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실장, 자백하시라. 대통령 마음에 들지 않는 정당을 없애려고 벌인 민주파괴행위를 언제까지 감출 수 있는가? 국정원 대선 개입이 탄로나 민주적 정당성을 잃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난도질한 범죄를 낱낱이 밝히라”고 이정희 전 대표 특유의 칼날같은 화법을 다시 구현했다.

이정희 전 대표는 또한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유화한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 김기춘 실장, 피의자로 전락한 두 사람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이라면서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은 이제 알아야 한다. 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정치보복,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의 진실이 이제는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이 자백 또는 사실을 실토할 리 만무하다는 게 네티즌들의 이구동성이다.

이정희 전 대표는 통합진보당 해산 헌재 판결이 내려진 이후 지난 2년 동안 침묵해왔다. 하지만, 최근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공개되면서 KBS 언론장악 음모는 물론 전교조 공안조작에, 통진당 해산까지 밝혀지고 있다. 그야말로 망자의 수첩이 박근혜 정권의 패악을 낱낱이 폭로할 판도라 상자가 아닐 수 없다.

이 판도라 상자의 주인공이자 이정희 전 대표를 분노케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은 김영한 전 수석이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 민정수석에 임명됐다가 2015년 1월 사직하면서 청와대에서 있었던 회의 지시 등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한 수석은 그후 과음 등의 영향으로 지난 8월 갑작스레 사망했지만,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극심한 압박이 김영한 수석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특히, 김영한 전 수석의 모친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우병우 민정수석 때문에 김영한 전 수석이 몹시 괴로워했다”고 언론에 폭로하기도 했다. 이정희 전 대표가 이날 통탄한 통합진보당 해산 관련 내용 역시 당시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김기춘 전 실장이 핵심 인물로 지목하고 있다.

이날 이정희 전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김기춘 전 실장이 이끄는 대통령 비서실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선 통진당에 대한 정치보복의 컨트롤타워였다”는 것이다. 이정희 전 대표는 이어 ‘헌법재판소장도 공모한 것으로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청와대 지시에 헌재소장이 따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대답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정희 전 대표 이외에 김미희 김선동 오병윤 김재연 이상규 전 의원 등이 함께 참석했으며, 통진당 출신으로 이번 20대 총선에서 울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윤종오 의원이 배석했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

박귀성 기자  skanskdl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