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전 장관이 특검에 출석했다. 유진룡 전 장관이 특검의 출석 요구 때문이다. 유진룡 전 장관은 그렇다고 피의자 신분이 결코 아니다. 유진룡 전 장관은 참고인의 자격이다. 즉,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특검에 출석한 이유는 특검 조사에 필요한 확인할 사항이 있어서 참고가 될만한 진술을 하기 위해서다.

유진룡 전 장관은 이날 특검에 출석하기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블랙리스트 정의란.. 사람들 차별하고 핍박하는 행위 자체이며, 범죄”라고 단정했다.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을 정조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3일 문건 존재와 작성 및 전달 전 과정을 폭로했던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61)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고, 유진룡 전 장관은 이에 응해서 이날 오후 특검에 출석했다.

▲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3일 특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면서 미리 유진룡 전 장관을 기다리던 기자들과 1문1답을 진행하고 있다. 유진룡 전 장관은 이날 이자리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범죄행위이자 헌법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듣지도, 알지도 못한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대통령 전 비서실장, 최순실 비선실세의 문화예술계 농단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단서가 나올지 유진룡 전 장관의 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진룡 전 장관은 특검팀 수사개시 이전에 이미 비공개 조사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블랙리스트 작성 배후에 김기춘 전 실장이 있다고 폭로하며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구속할 수 있도록 특검팀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인물로 평가된다.

언론 인터뷰에서 유진룡 전 장관은 자신이 직접 박근혜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2014년 1월쯤 “‘이런 식으로 하실 거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도 밝혔다. 불의에 대해 친히 맞섰던 것이다.

특검팀은 이같은 유진룡 전 장관의 진술과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인 ‘비망록’을 토대로 수사를 벌인 끝에 지난 21일 ‘블랙리스트’의 몸통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78)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을 구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기춘 전 실장은 이미 관련 증거들을 대부분 인멸한 상태다.

이후 구속 당일 조윤선 전 장관을 불렀고, 지난 22일에는 김기춘 조윤선 두 피의자를 동시에 소환해 블랙리스트 작성 경위와 박근혜 대통령 지시 여부 등을 집중 추궁했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발생 한달 뒤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고 판단했지만, 박근혜 대통령 측은 이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

이에 특검은 청와대 압수수색과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 이전까지 혐의 입증을 위한 증언 확보에 주력할 방침으로 알려졌는데, 유진룡 전 장관을 참고인으로 부른 이유와 맥락을 같이 한다. 박근혜 대통령 측 황성욱 변호사는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이 구속된 날 기자들에게 “특검에서 말하는 소위 ‘블랙리스트’ 작성을 박근혜 대통령이 어느 누구에게도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 관련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지난 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블랙리스트에 대해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유진룡 전 장관이 출석한 문제의 핵심인 블랙리스트는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문화예술계 인사나 단체의 정부 지원을 배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건으로, 특검 수사를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심각한 헌법 기본정신을 유린하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 관련 분야 전반에 걸친 검열 및 지원배제가 이뤄졌음이 드러났다.

블랙리스트의 작성이 세월호 참사 발생 한달 뒤 시작돼, 작성 목적이 세월호와 관련한 문화예술인 활동 방해와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 사전 차단에 있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블랙리스트가 본격적으로 작성된 2014년 말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60·구속)이 블랙리스트 관련 대통령 현안보고를 주기적으로 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벼랑 끝에 몰린 상태다.

특검팀은 김기춘 전 실장이 김종덕 전 장관에게 이같은 보고를 요구해 문체부 현안에 포함됐고, 추진 경과와 향후 확대 계획, 현장 적용 등을 담은 보고서 작성이 이뤄졌음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블랙리스트의 존재나 지시 및 개입 여부를 부인해 온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이 수사에 협조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이날 유진룡 전 장관 조사를 통해 이들을 압박할 추가 단서 확보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날 유진룡(61) 전 장관과 정관주(53·구속) 전 1차관을 불러 조사하는 등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검은 이날 오후 2시 정관주 전 차관을 불러 블랙리스트 작성 경위와 추진 경과와 관련한 ‘윗선’ 보고 현황 등을 캐물었다.

특검은 지난 12일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관여한 혐의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과 함께 정관주 전 차관을 구속했다. 이어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1일 구속된 이후 블랙리스트 수사의 초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보고·관여 등 개입 여부로 옮겨간 상태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누차 “저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지시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특검은 박 대통령이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에게서 서면보고를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유진룡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작성·관리를 김기춘 전 실장이 주도했으며 이는 정권·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을 차별·배제하기 위한 것으로서 명백한 범법행위”라고 지적하면서 “또 이는 우리 사회의 민주질서와 가치를 훼손해 헌법을 위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검은 또한 이날 오후 안종범(58·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도 불러 조사했다. 유진룡 전 장관은 특검 사무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과 만나 “블랙리스트가 핵심인데 그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얘기를 해봐야할 것 같다. 블랙리스트는 까만 명단이 아니다. 정부 예산이나 제도 등 공공의 자산을 가지고 자기네들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차별하고 핍박한 행위 자체”라고 성토했다.

류진룡 전 장관은 이어 “블랙리스트는 분명히 존재한다”면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만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고 또박또박 설명했다.

유진룡 전 장관은 이에 덧붙여 “지금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는 것 같은데 거의 유일하게 김기춘인 것 같다. 조윤선 장관도 인정했듯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유진룡 전 장관은 그러면서 “일부에서 블랙리스트가 정당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데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은 오히려 자기가 한 일이 아니다고 말한다”면서 “정작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는 모른다, 안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누가 그 일을 했는지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고 김기춘 조윤선 두 사람을 정면으로 지목했다.

한편, 유진룡 전 장관은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퇴임 한 달 전쯤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으며, 리스트는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만들어졌다고 폭로했다. 특검팀은 이날 오후에 유진룡 전 장관을 불러 그동안 문체부와 청와대 관계자들의 진술을 비교하면서 리스트 기획에 김기춘 전 실장 등이 얼마나 관여했는지를 추가로 확인할 방침이다.

한편, 특검은 정유라의 이대 학사비리 의혹과 관련해 결국 최경희 전 이대 총장에게도 구속영장이 청구했는데, 이르면 내일 밤 늦게 구속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네티즌들은 유진룡 전 장관에게 관심을 집중하면서 이날 오후 4시 현재 “유진룡 장관 같은 의인은 다시 정부 각료로 복직시켜야 한다”면서 유진룡 전 장관에 대해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

박귀성 기자  skanskdl01@hanmail.net